현대 사회에서는 우리의 삶이 화면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책에서는 화면에 갇혀사는 현실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제 병독성이 크게 낮아져 계절성 질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남긴 정신 상태는 웬만한 병증보다 훨씬 오래갈 겁니다. 이 정신 상태는 두려움과 칩의 묘한 조합으로 요즘같이 바깥세상이 위험한 때에는 더욱 두드러지는 경이도 합니다. 그럼에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새 날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해, 그리고 신체가 냄새, 소리, 빛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화면은 화면일 뿐입니다. 빗장을 걸고 집에만 처박혀 산다면 안전을 위해 죽음과도 같은 권태를 대가로 치르는 셈이지요.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벌써 피곤한 삶입니다. 그러한 삶은 때 이은 노년을 불러들여서 청년을 노인처럼 만듭니다. 땅굴과 소굴은 토끼나 두더지에게 양보하세요. 인간은 빛과 탐색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마땅한 도전 과제를 마주하고 역경에 부딪혀야 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악몽은 스러지고 우리의 두려움이 실상은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가능성의 문을 되도록 많이 열어 놓으세요. 앞으로 당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문을 하나씩 닫아 갈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숨만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진짜로 산다는 것은 가능성의 장을 끝까지 달려보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꺼이 밖으로 나가는 위험을 무릅써야 합니다. 이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바이러스보다는 무기력과 권태입니다. 이 두 단어로 우리의 현 상황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모든 게 복잡합니다. 과거에 쉬웠던 일들이 까다로워지고, 예전에 어려웠던 것들은 더욱 불가능해졌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세계는 다양한 금지 조건과 제약으로 가득 찬 미로를 건설하는 데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들은 전염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모종의 자유를 희생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이성적인 해결책은 각자 집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욕망이 자신의 공간을 넘어 다른 곳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욕망을 다이어트하고 무엇이 남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을 극단적으로 줄여야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의 소굴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자유는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 중 하나이며, 그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할 일도 없고, 금전적인 여력도 없어서 밤낮으로 텔레비전이나 동영상을 보며 기분 전환을 찾을 것입니다. 자유로운 시간이 도가 지나치게 될 경우, 우리를 덮치는 휴대전화의 화면만이 유일한 피난처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짜 활동은 특권층에게만 제공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짐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때로는 과거를 버리고 혁신해야 합니다. 자유는 배워야 할 기술이며,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를 자유라는 이상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되찾기 위해 앉아서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 대신 활동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었으며, 우리는 세계와 연결된 채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고, 스마트폰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사건과 경험입니다. 우리는 단조롭고 예상 가능한 패턴에 빠져들지 않고, 현실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통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와 열정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바람을 초대하려면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과 시련을 피해내는 인내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감정을 나누며 함께하는 여정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편안한 이불속으로 숨어들어 비디오 게임이나 드라마를 정주행 하며 소비하는 것은 그저 일시적인 즐거움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우리는 시간을 늦추거나 앞당기고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일상의 모호함 속에서 깨어나고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동굴 속 죄수처럼 맹목적으로 그림자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가서 별들이 빛나는 하늘을 보며 세계를 탐험해야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동굴 비유를 통해 우리가 현실과 이상적인 세계를 구별하며 지식과 지혜를 향해 나아가는데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진리와 선을 탐구할 수 있는 소수의 철학자들은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춰야 합니다. 우리는 동굴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변모시켜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화면 속에서 세상을 지켜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발견해야 합니다. 외부 세계와의 상호 작용이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상 세계에 현혹되어 너무 오래 머물면 안 됩니다. 화면 속의 허구적인 현실에 빠져들면 현실 세계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율성을 잃고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화면을 넘어서 실제 세계에서의 경험과 상호 작용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외부 경험과 상호 작용
이 글을 읽고 느낀 점은 삶을 완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화면 속의 세상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경험과 상호 작용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화면에 갇혀 삶을 소비하는 것은 일시적인 즐거움에 불과하며, 진정한 가치는 현실에서의 경험과 상호 작용에서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팬데믹은 우리에게 자유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고도 어떤 의미 있는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달라져야 할 행동은 화면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실에서의 활동과 경험을 더욱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외부 활동에 참여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주변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다짐과 결심은 현실과 가상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입니다. 화면 속의 허구적인 현실에 빠져들지 않고, 실제로 외부 세계에서의 경험을 즐기며, 주변 사람들과의 소중한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입니다. 계획은 화면 시간을 제한하고, 외부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삶의 다양한 측면을 탐험하며, 주변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노력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